2012년 3월 2일 금요일

[기자수첩]도박 권하는 일본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일본은 `파친코 왕국`이다. 파친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슬롯머신의 일종으로 쇠구슬이나 코인을 사 투입구에 넣고 돌려 그림의 짝을 맞추는 도박성 게임이다. 한때 일본에서 파친코가 유행할 때엔 주부들까지 파친코에 빠져 더운 여름에 아이를 차 안에 내버려뒀다 사망케 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사행성이 강한 파친코가 일본에서는 도박이 아닌 합법화된 게임으로 통한다. 사용자가 해당 금액을 파친코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품으로 교환한 후 다시 돈으로 환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친코는 일종의 놀이문화로 여겨지고 이 때문에 관련 업체들도 상당히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는 아직 카지노가 없다. 도박을 불법으로 정의하고 카지노업체 진출을 막고 있기 때문인데 준 도박인 파친코가 양성화된 일본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물론 한국에서도 카지노 산업을 허용하고 있는데 유독 일본만 도박산업에 대한 문을 굳게 닫고 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카지노 산업을 개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셸던 애덜슨 등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거부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마치 마피아가 소유해야 할 것만 같은 카지노 산업은 과거와 달리 양성화됐고 리조트산업과 맞물려 관광객을 유치해 자국 경제를 상당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최근 침체 일로를 겪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내칠 수 없는 유혹이자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하필 왜 이 시점이냐를 두고서는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도박산업 개방은 일본이 오랫동안 유치해 온 원칙과 자존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예가 될 수 있다.

요즘 일본의 처지는 말이 아니다. 일본은 지난해 대지진 후 원전 사고를 겪고 31년만에 무역적자국으로 변모하는 등 추락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카지노 산업 개방 추진이 발표되기 하루 전에는 일본 D램업계 1위이자 전 세계 3위를 기록했던 엘피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이번 카지노 산업 개방이 일본 경제에 돌파구를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불 보듯 뻔한 부작용들을 감안할 때 절대 간단한 문제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의회에서는 여전히 이를 반대하고 있고 특히나 이미 소비세 인상으로 험악해진 일본의 민심의 향배도 관건이다. 때론 극약처방이 최선이지만 자칫 몸이 크게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일본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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