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익이 플러스가 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내 나름대로 이 화두를 쫓아 많은 생각을 해봤다. 나에게 맞는, 내가 납득할만한 사례와 경험의 열거를 통해 머리속에 뚜렷한 개념의 체계를 정립하고 싶었다.
아마도 사부를 만나지 못했으면 이런 개념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만큼 냉철히 '전략'의 개념을 이해하려 했을까. '운'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내 생활을 위태롭게 보리라 생각이 든다. 생활에 있어서는 그다지 체계적이지도, 정리되어 있지도 않기에. 하지만 몸으로 부딪히고 발광해보며 습득하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것을 내 스타일이라고 정의할 수 밖에. 트레이딩을 배우기 위해 나는 강원랜드로 향했다.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것엔 솔직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리스크, 한정된 손실한도, 한정된 손실한도의 횟수, 내 돈이 아니라는 거리감. 벌고자 하는 지나친 욕심마저도. 온몸으로 의사결정의 벽에 몸을 던지기엔 차라리 카지노가 나았다. 몇달간 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룰렛의 세계에서는 하루면 압축해서 배울 수 있달까.
처음 룰렛에 앉았을때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굴려 1000 원 단위로 이래저래 베팅을 해봤다. 결국 베팅이라는 생각에 서너번 후엔 맥이 빠졌다. 이건 그냥 눈감고 하는 도박이잖아. 룰렛 테이블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머리속에 엑셀 시트를 마구 그려넣기 시작했다.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가.
신들린 듯 인사이드 (개별 숫자들)에 칩을 뿌려넣는 떨리는 손들을 보며, 그 언제보다 '도박' 에 대한 철저한 두려움을 느꼈다. 저건 그야말로 '도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잡아 옵션 매수를 해대던 때에는 진심으로 느끼지 못했던 일확천금에 대한 지독한 어리석음을 느끼게 됐다. 결국 나의 눈먼 매수도 저것과 같았어. 때론 인간이란 현명한 사람보다, 자신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보며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더라.
안타깝고도 한편으론 고맙지만 그건 내 인생에 있어 최강의 동기였다. 나보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저들보다 낫다! 라는 확신에 자신의 원칙들을 강력하게 정의해 나가는 것. 아마 나의 사부님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원칙들을 세워나갔을 것이며, 그 강한 자신감 때문에 나에겐 괜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나도 one of them 으로 보시는 사부님 앞에선 괜한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광란의 카지노에선 내가 아마도 유일하게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선 내가 사부와 같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느낌, 내가 사부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쩌면 파생의 세계에서도 더욱 느꼈을지 모를 느낌, 그것 덕분에 정신이 점점 자유롭게 춤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해낸 전략은, 짝수 홀수, 19~36:1~18 의 대수 소수, 적색 흑색 등으로 2분화된 룰렛 숫자에 대한 (outside) 베팅이었다. 1/3 확률로 나눠지는 구간들도 감안해 보았으나 수학적 예측이 너무 어려웠다. 1/2 베팅의 논리인즉슨, 짝수가 4번 연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3번 연속으로 나올 가능성보다 낮고, 마찬가지로 5번 연속으로 나올 가능성, 6번 연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확률상 더욱 낮지 않을까 하는 논리였다. 물론 매번의 룰렛 결과는 1/38 확률이다. 짝홀로 따져도 18/38, 47% 정도이다. 하지만 룰렛이 계속될 수록 대수의 법칙에 의해 확률은 의미를 가져간다. 짝에 꾸준히 걸면 94%에 점점 가까운 수익률이 나게 되는 것이다. 양의 기대수익률을 내고자 한다면, 지난번 숫자가 짝이었을때 이번에 홀수로 바뀔 가능성이, 연속된 짝으로 인해 점점 높아질수록, 베팅을 2배 이상 늘려가는 전법이 있을 것이다. 길게 본다면 카지노가 나에 대해 유리하게 갖춘 6%의 엣지를 꺾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짝이 한번 밖에 나오지 않았을때에는 큰 베팅을 할 수가 없었다. 홀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하지만 베팅을 쌓아가며, 4~5번 연속으로 짝이 나왔을때에는 크게 걸어도 마음이 편했다. 한번의 베팅으로 지금까지 잃은 누적액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었고, 더군다나 확률은 나의 편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록 가능성은 적지만, 6, 7번 연속으로 한쪽 면이 나오며 수가 왜곡될때, 시장의 왜곡에 대처할때의 긴장감과 의사결정의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리스크 관리가 먼저인가, 과감한 베팅이 먼저인가. 여기서 전액을 잃는 다면, 사부님이 항상 자문하신다는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것은 기회인가 위기인가. 시장이 나에게 유리하게 움직일때, 하지만 손실이 꽤 누적됐을때... 추세가 이어졌을때 변곡점으로 볼 것인가 추세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 피라미딩이냐 contrarian 이냐. 시장에서 고민할 수많은 것들이 그곳 도박의 성지에서 강렬하게 내게 와닿았다.
그곳에선 누구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이런 불확실성의 세계에 두려움을 극복해가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원시적 용기에 쾌감을 느낄 테지만, 감히 말하건데 그냥 미친듯 신내림 받았다는 믿음 하나로 칩을 뿌려대는 만용의 오르가즘보다 내가 하는 베팅이 더 재밌을 것이다. 카드나 화투를 치는 프로 타짜라면 당연히 알터인 기본적인 전략이 아닐까. 카지노의 사람들은 진짜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오늘, 바로 이 순간, 왠지 나만 운이 좋을 거 같애" 라는 인간 본연의 탐욕에 매순간 영혼을 빼앗기는 끝없는 연속이라고 본다. 자신에게 좋은 패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정신 따윈 전혀 없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중독 그 자체다. 빠찡코는 그 중독 중에도 단연 왕좌에 있다.
행운의 여신이 오늘만큼은 내 뒤에 서줄 수 없을까?
똑똑한 사람들마저도 쉽사리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런 희망이 극대화 되는 곳이 카지노이기에, 그곳 사람들은 전부 미치광이 같지만 한편으론 전부다 지극히 정상인이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는, 합리성 이전에 그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지독한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공기 속에 흐르는 나의 불확실성을 조종하는 운명이라는 존재를 만나볼 수 있는 그 공간, 나와 같이 더욱 지독하고 못된 동기 (나혼자 잘났다는?)를 갖추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군들 영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도 스스로 딜러가 아니었다면 그날 카지노에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근거림 외에 결정적으로 중독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 뇌 속의 원시적 습성 때문일 것이다. 수십만년간, 자신보다 강한 짐승과 맞서 용기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몸을 던진 유전자만이 생존하고, 존경 받아왔다. 우리의 심연에는 공포를 강하게 깨부수고자 하는 희망과 용기가 내재되어 있고, 행동 경제학에서 유행하게 된 이론처럼, 그것이 바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만 유독 시장에서만 돈을 잃고 마는 근거가 된다. 카지노도 마찬가지다. 그 스릴을 벼랑 끝에서 암벽 등반을 하며 느낄 수 없는 자들은, 결국 카지노의 벼랑 끝에서 느끼며 자신의 용맹을 확인한다. 엄청난 돈을 잃어가며.
주식시장에 처음 입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의 근거로는, 나만큼은 운이 좋을 것이다, 혹은 나는 더 똑똑해서 남들 같이 탐욕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두가지 논리 중 하나로 접근하리라. 나 역시 두 가지가 치기라는 이름으로 뒤범벅 되어 이곳에 뛰어들었으니깐. 내가 더 운이 좋으리라는, 행운의 여신 티케가 오늘은 내 등뒤를 스쳐갈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은 티케에 대한 격렬한 모욕이다. 왜 그녀가 당신 뒤에 있어야 하나. 교만이다. 반면 나의 도박은, 불행이 몰아닥치지만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이 누군가에게 강력하게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양의 기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되려 티케를 존중하는 전략이라 생각이 되었다. 비로소 마음속에 양의 기대수익에 대한 중요함이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그곳 패망의 구렁텅이에서.
Ed Seykota 라는 전설적 트레이더 (이자 M.I.T 공대 출신의 심리학 애호가, 시스템 트레이딩의 정신적 지주)는 everybody gets what they want 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주식시장에서는, 쾌락을 원하는 사람은 도박의 쾌락을 얻어가고, 돈을 원하는 사람은 돈을 얻어간다는 간단한 진리다. 이런 얘기를 우리네 용감무쌍하고 패기 넘치는 대다수의 민간인에게 얘기하면, 버럭 하리라. 세상에 돈 잃고 싶은 사람 어디있으며, 돈 따기 싫은 사람이 어디있소?! 맞다. 하지만 돈을 딸 수 있음에도 짜릿한 스릴과 도전을, 혹은 좌절과 한탄을 더 사랑하는게 인간이다. 주식시장에서 얼마를 땄네, 혹은 얼마를 잃었네,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자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내면에는, 돈을 버는 목표보다 은근히 그 것을 벌어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고, 그 도박을 더 즐기고 싶다는 동기가 더 강했다는 얘기이다. 만약 돈을 버는게 목표였다면, 돈을 잃었을때 백배 복기하여 소중한 자료로 삼고, 같은 실수를 다시 안하도록 공부했을 것이다. 근성이나 심지나 지성의 문제가 아니다. 동기의 문제다. 크게 한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즐기는 이상 돈을 더 벌기 위한 추가의 노력이나, 돈을 덜 잃기 위한 추가의 노력을 할 이유가 적은 것이랄까.
기관의 입장에서, 하면 안될 소리지만, 주식시장 중독으로 생각 없는 베팅을 하는 사람들이 기관의 배를 불려주는 경향이 꽤나 있다. 심지어 파생상품, 특히 옵션의 세계는, 양매도 위주의 기관이 판을 깔아주고, 매수 중심의 개인들이 비싼 돈 내고 노름을 즐기는 house 라는 느낌마저도 가끔 든다. 맞다. 가끔은 개인들이 큰돈 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딜러들의 초고액 연봉을 내주고 있을 뿐이다. 딜러들이 밉겠지만,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의 시간과, 쾌락에 대한 끝없는 절제를 내재화시킨 딜러들이 벌어가는 수입에 태클을 걸어서는 안된다. 개인들에게 신나는 판을 벌여 주잖은가. 게다가 여담이지만, 딜러들이 돈을 챙겨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을 챙겨가는 딜러는 매번 바뀐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짧디 짧은 커리어를 인생 다 내놓고 뛰어들어 한순간 부를 맛볼런지 몰라도, 그것을 손쉽게 벌지도 지키지도 못하고 만다. 티케가 개입이라도 하는 날이면, 희망의 창끝에 맞서서 산산히 부서지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딜러들 중에서도 굉장히 승부사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건가? 기대수익률이라던가 리스크 관리 등은 내재화 되어 있기는 하나, 그토록 치열하게 의식적으로 고민하고 전략을 세워나가는 사람은 사부를 제외하고는 몇 못봤다. 조금 많이 내재된 사람은 마치 우연처럼 살아남고, 덜 내재된 사람은, 마치 불운처럼 사라져갈 뿐, 살아남은 사람이 강자라는 논리로 성공의 이유 마저도 미신화 된 것이 사실이다.
카지노에서의 첫날 나는 꾸준한 수익을 내다가, 6연속 적색을 맞이하게 된다. 정확한 2배수 원칙에 의거해 과감하게 그때까지 번 돈을 올인하여 잃었고, 7연속은 내 짧은 경험으로 본적이 거의 없었기에, 원금까지 10만원을 걸었다. 그때까지의 maximum drawdown 은 초반에 잃었던 2만원이 전부였다. 왠걸, 10만원마저 털리고 말았다. 비웃기라도 하듯 8번째엔 흑색이 나왔고, 나는 버스시간이 다가와 (사실 떠날 시간이 돼서 더욱 과감하게 미련없이 베팅한 면도 있지만) 자리를 떠났다. 아마 그날 깨지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수많은 교훈을 얻어왔다.
검색해보니 내가 사용한 전술은 소위 Martingale (마팅게일) 전법이었다. 몇백년전에 개발되어, 절대로 지지 않는 무적의 전법인양 인식되었으나, 알고 보면 헛점이 많다. 그 이름이 붙은 마팅게일을 시조로, 이 전법을 사용한 사람은 결국 모두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번 살펴보자.
첫번째 베팅엔 1칩. (=1000원) 졌을 경우에 두번째엔 2칩, 세번째엔 4칩, 8칩, 16칩, 32칩, 64칩, 128칩. 256칩... 512 칩... 물론 아무리 이어져도, 마지막 한판까지 가볼 자금력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1칩이 이익이다. 뿐이랴, 두배 이상의 베팅을 할 경우, 액수가 엄청나게 커지겠지만, 여튼 절대로 기대수익률이 플러스인 전략이 된다.
카지노가 이 전술을 허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베팅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었던 테이블은 아웃사이드 베팅 한도가 10만원이었다. 7연패 이후에는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트릭이 존재한다. 인사이드는 5000 원까지 걸 수 있기 때문에, 9만원을 추가로 베팅할 수 있다. 그래도 안되면? 친구들을 고용해서 개별적으로 베팅한다면 3명이서 60만원도 걸 수 있다. 어찌됐든 장기적으로 이 전략을 사용해서 한없는 수익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두번째 이유인,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8번 연속으로 수열이 나올 가능성이 (0.5)의 8승 (256번에 한번)으로 보일테지만, 그건 딱 8번만 동전을 던졌을때다. 실제로 256 번을 연속으로 던졌을때 그 안에 8번 연속이 나올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다. 12번, 15번 연속으로 나오는 것도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엑셀 난수로 간단하게 도전해보시길.)
마팅게일 전략은 대수의 법칙 속에서 고른 분포를 보이려는 성질 때문에 edge 가 발생한다고 본다. 8번 연속으로 동전이 앞면이 나와도 여전히 다음 동전 던지기의 가능성은 50:50 이다.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한다면 의미 없는 edge 다. 다만, 장기적으로 꾸준히 왜곡 현상에 contrarian 으로 베팅을 했을때에 edge 가 생기는 것이다. 즉, 8번 연속으로 '꾸준히' 나오기가 어렵다는 데에 베팅을 '꾸준히' 해줬을때에 확률이 나의 편이 되는 것이지, 단한두번의 풀베팅에서는 의미 없다는 것이다. 다우지수가 하루에 777 포인트가 빠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하루에 200번 돌릴까 말까한 룰렛에서는, 어떤 기괴한 수의 연속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상할게 없다. 대수의 법칙이 먹힐만큼 많은 양의 베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마팅게일 전략은 승리의 가능성을 약간 높여줄 뿐, 그 자체로 안전한 게임이 아니다.
세번째 이유로 마팅게일의 절대 약점은, 9번째 거는 금액이 51만원이 된다. 51만원을 걸어 승리했을 경우, 51만원을 벌어서 모든 손실을 다 메꾸는 것을 보이지만... 사실 이 9번을 거는 일련의 전술 자체로 봤을때 마지막 베팅은 고작 1천원을 추가로 벌기 위해 102만원을 잃을 각오로 덤벼들게 된다. 운이 따라 평시에 많이 벌었다 치더라도, 수익이 나는 구간은 마팅게일이 먹힌 구간에서의 1천원(원금)씩이 쌓였을 뿐이다. 무적이라 불릴 수 있지만, 종국에는 너무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안정적이되 작은 수익을 쫓아야 한다. 리스크 관념이 있다면, 절대로 현명하지 못한 전법이다. 뿐이랴, 12번 연속 구간이라도 나오는 순간에는, 200만원이 되고, 15번 구간엔 1600 만원이 있어야 된다. 1000원을 먹기 위해 1000 원으로 시작한 게임에서 말이다. 만원 2만원으로 시작했다가는 상상할 수 없는 자본력이 있어야 고작 소액을 딸 수 있다.
물론 기계적인 마팅게일은 이러한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베팅과 자금 관리가 가미된다면 어떨까.
예컨대 추세가 나오는 구간에서 몸을 사려서 손실을 조금 감수하고라도 베팅액을 줄인다면. 베팅액을 줄여서 이겨도 이긴게 아닌 상태가 되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일종의 베팅이 되는 것이다. 지면 그 다음판에 더 크게 들어갈 자본이 마련되는 것이기에. 만약 베팅 자체를 안하고 큰 추세가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8번 연속이 나왔을때부터 1000원씩 들어갈 수 있다면 승산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렇다. 옵션 매수자와 마찬가지로, 도박 참여자는, 카지노와는 달리, 확률이 나의 편이 아닐때 베팅을 안해도 되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점만이 룰렛을 하는데 있어 카지노에 비해 우리가 갖는 절대적 edge 이다. 하지만 누구나 시간의 한계가 있고, 또한 참여를 안하고 기다려야 하는 근질근질함을 못견뎌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edge 를 값비싼 취미로 포기하는 것이다. 매매도 마찬가지다.
카지노에 가면 나의 관심사는 세가지다.
1. 기대수익률이 최고가 되는 전략 구축 및 실현.
2. 리스크 관리 - 자금 관리. Risk of Ruin 을 피하는 방법으로, 2만원을 잃었을때, 그 돈보다 더 아까운 것은, 이번 판에 4만원을 잃어서 내가 게임을 그만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나는 게임비를 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2만원을 버린다. 반면 한번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철저히 수학적 관점에서 내게 유리한 입지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3. 추세와 비추세로 흩뿌려지는 숫자의 향연. 비추세 구간은 마팅게일이 먹히는 구간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팅게일 킬러인, 추세가 발생한다. 이때가 언제일지, 얼마나 지속될지는 절대로 알 수 없지만, 비추세가 나타나는 만큼 추세도 또한 확률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 비추세는 비추세대로 벌고, 추세 때는 과감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매매에도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다만 모니터에 둘러 쌓인 내게는 좀더 현장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 뿐.
내 원금, 더 나아가 작은 수익도 잃어서는 안된다. 기회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진입할 이유가 없다. 뚜렷한 전략이 없다면 죄다 도박일 뿐이다. 나만의 지표를 이용해, 내가 아는 '정상구간'이 왜곡 될 때를 알아채는 연습이 필요하다.
카지노와 경마나 주식시장이 다른 이유는 분명하다. 카지노는 수의 향연일 뿐이지만, 경마나 주식시장은 인간과 짐승이 주체가 된 살아있는 무대라는 것이다. 숫자처럼 순진무구하지 않다. 분명한 세력들이 있고, 왠만한 고수라도 알아채기 힘들만큼 수많은 변수들이 세상과 엮여 춤추고 있다. 다만 기본기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번에 실험한 전략은 역시 상당한 기대수익을 자랑하는 전법이다.
룰렛의 38개 숫자 중에 0과 00 이 두개를 차지하고, 양수가 36개를 차지한다. 0과 00에 동시에 베팅하면 금액의 17배를 받게 된다.
이 전략의 첫번째 전제는, 0과 00 둘 중 하나의 수가 나올 확률이 2/38, 즉 1/19 라는 것인데, 더 나아가 카지노의 운명이 달린 숫자들인만큼 그 어떤 개별 숫자들 보다도 착실하게 나와주는 성향이 있으면 있지 없진 않을 것이란 전제다. 즉, 최소한 60 판을 했을때, 2번 이상 나와줄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는 뜻이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언제든지 좋다. 19번 연속으로 0또는 00이 안나왔을때부터 베팅을 해줘도 무관하다. 그때부터의 베팅은 철저히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될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운명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독한 악운이 아니라면 60번 연속 나를 엿먹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 한도인 1000 원 부터 베팅을 했다 치자. 17번 베팅을 해서 마지막에 한번만 맞추면 본전이다. 못맞췄다고 하자, 그 다음부턴 2000원을 베팅, 9번 안에만 맞추면 본전이다. 그 다음부턴 3000원을 베팅해볼까. 6번 안에 맞추면 본전이다. 그 다음엔 4000 원. 4번 안에 맞추면 본전... 5000 원, 대략 세번. 6000원도 대략 세번. 여기까지 42번의 턴이 지났다. 19번에 한번은 나와주는게 정상인 두 숫자가 61번 연속으로 안나왔다고 하자. 나같으면 만원까지는 단계적으로 올리며 풀베팅을 해주리라. 한 숫자에 만원까지 걸 수 있는 테이블이라면, 0과 00에 각자 (35배), 그리고 그 두개 더블 베팅 (17배)으로 두 숫자에 총 15000 원까지 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20여만원을 날린다면, 난 지독한 악운이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떠날 것이다. 한두 숫자에 베팅해보며, 오늘은 내게 왜 특별한 행운이 따르지 않는 것인가 라며 티케를 저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장기적인 기대수익률이 분명히 (+)인 전략이지 않은가.
두번째는 한 숫자에 더블베팅해주는 마팅게일 전법을 약간 수정한 꼴인, 적흑, 대소, 짝홀의 세가지 50% 확률 전법을 섞어 쓰면서, 한쪽에 추세가 발생해 마팅게일식으로 액수를 늘려야 할때, 차라리 액수를 분산해서 여러 베팅을 하는 것이다. 셋 중 한 전략의 승산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을때, 셋다 비슷한 액수로 베팅을 한다면 평상시에 비해 세개를 베팅할때의 승산도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숫자의 왜곡현상을 이용한 것보다는 기대수익이 낮다. 하지만 반면에 큰돈을 다 날릴 리스크도 낮다. 더 안정적이되 분명한 승산을 분산해서 얻고 가는 것이다. 특히나, 큰 추세가 발생해 마팅게일이 과격하게 박살날 가능성을 배제하고, 더욱 큰 추세에서 과감한 베팅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결국은 매매도 그래야 할 것이다. 올인을 하고자 할때에는, 반드시 헷지를 해줘야 한다. 헷지를 해줘도, 내게 확신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게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자산을 지키는 것, 그리고 수익도 지키는 것. 그것이 절대적 수익률을 지켜내는 고수들의 비법이 아닐까. 그것을 더욱 뼛속까지 체화시키기 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다만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속성 학습을 해야하는 나로서는 제법 많은 analogy 를 얻었기에 만족한다.
멀쩡한 몸과 마음으로 그 탁한 지옥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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