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가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으로 보여도 형세가 있고 기세가 있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승부의 세계라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놓은 욕망과 좌절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 법.
도(道)도 없고, 예(禮)도 없는 살(殺)같은 승부의 세계에 어쭙잖은 객기로 덤벼드는 무모함은 승부를 망각한 시골의 푸줏간 칼잡이에 다름 아니다.
카지노를 알고나서 1천만원을 잃었든 1억을 잃었든 그 정도의 돈을 잃었다면 마음고생은 오죽했겠는가. 그럼 이제 천진난만한 유희 속에서 잔치상을 기대했던 우연을 바랄 때는 지났다.
잔치를 축제로 이끌 의무는 그대에게 있는데 객으로 와서 주인행세하는 것도 웃습고, 무거운 엉덩이를 옮길 줄도 모르는 그런 모습도 추하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둘 중에 하나만 맞추면 되는 제시된 문제 속에서 반도 맞추지 못하는 것이 바카라의 군상들이니 그대가 실컷 딴 어느날이든, 잃고 잃고 또 잃다가 문득 터득한 어느 날이든 머릿속에서 결국 바카라는 홀짝 게임이라는 결론으로 몰아간다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할 길이 없음을 명심하라.
지금 그대가 20대이든 40대이든, 남자든 여자든 밑천이 적든 많든, 산전수전 공중전에 토굴전까지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이제 막 카지노의 출입문에 들어선 촛자든 딜러앞의 엎어진 카드는 그 사정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운이 카드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은 집나간 황소가 비어있는 외양간으로 찾아올 운보다 못한 것이니, 오늘은 어제와 다를 수 있다는 어줍잖은 객기로 덤벼드는 기대감은 빨리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엎어진 카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가 그런 통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조화와 균형이 자연의 섭리인것처럼 정해진 카드의 반복은 이미 그 자체로 ‘수렴’이라는 통계적 속성을 만들고 있으니 뱅커냐 플레이어냐를 분명히 밝히는 바카라 게임에서 확률로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다소 우울하고 맥빠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카드는 어제도 중립이었고 오늘도 중립이며 내일도 중립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이 중립이 유리한 확률로 또 그리고 누구에게는 불행의 연속으로 다가온다. 왜 인가? 엎어진 카드를 대가리 까지도록 빌고 또 빌어도 카드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신은 카드의 결정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게임은 뱅커인가 플레이어인가? 그것은 알 수 없고 알게 된 순간 뒷북치게 된다.
신은 그대가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 올인될 알거지가 될 것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 운이란 주기로 찾아오며 찾아온 운은 도둑같이 왔다가 도둑같이 기버리니 옛 선인들이 한결결같이 입에 침튕기면서 떠들었던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깨어있어라’ 는 한마디가 아니었던가.
바카라에서 이긴다는 이런저런 비법은 더 이상 비법이 아닌 비법(非法)에 불과하니, 승자가 생각하는 비법의 첫걸음은 다음과 같으니 공감에 방점을 찍는 글이라고 생각든다면 먼저 자신을 조심스럽게 살펴라. 그래야 승산있는 싸움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끗발은 주기로 찾아온다.
노름판의 노련한 꾼들은 끗발이 죽으면 자리를 바꾸든가 여의치 않으면 변소에 가서 담배라도 피우며 끗발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옆집 과부와 옷벗기 고스톱이라도 친다면 모를까 밑천이 영감의 오줌발 처럼 졸졸 새고 있다면 죽은 끗발로 배팅한다는 것이니 기세(氣勢)가 올때까지 기다려라.
*끗발은 절대의 영역이나 배팅은 선택의 영역이니 승산은 배팅에서 완성된다.
자신의 돈으로만 배팅한다면 고수라고 할 수 없다. 적은 돈이라도 카지노의 돈을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자가 고수이며 프로이고 승자이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이다. 언제까지 날마다 좌절하고 날마다 희망이라는 허구에 얽매여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답이 없던 싸움은 그만두고 승산의 무게 중심을 끗발이 아닌 기세 배팅에 두어라.
*카드를 예측하지 말라.
차라리 앞에 앉은 딜러의 가슴사이즈를 예측하라.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것이다.
*나오는 카드에 질서를 찾지말라.
카드는 자기만의 길을 터놓고 있으니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얄굿게 움직이는 것이 그 본질이니, 질서를 찾는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침대위에서 서로가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자세에 패턴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침대위 끗발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죽어야 한다. 그것도 조금씩 자주 죽어야 한다.
누구든 자기 돈을 잃기 싫어한다. 돈을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돈잃고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면 또라이거나 위선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죽어야 한다. 조금씩 자주 죽어야 한다. 그래야 카드가 살아난다. 승자와 패자가 갈라지는 것이 바로 이 차이이다. 하수와 고수가 결정되는 것이 바로 이 분기점이다. 바카라는 승산이 있다 없다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귀신의 반열에 드는 절대 고수는 패가 잘 떠서 출중한 실력자가 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승부라고 판단될 때는 좋은 패가 올 것 같다는 유혹이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져도 미련 없이 버리는 냉정함에 있었다.
왜 조금씩 자주 죽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자기가 가진 밑천의 얼마를 손해 보기 때문인가? 그것이 아니라 자주 죽지 않으면 완전히 죽기 때문이다. 자기의 모든 것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혼(魂)이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꾼들이 내려야 할 가장 중대한 결정은 떠나야할 때를 아는 것이다.
자기 집에 불이나도 노름판이 끝장나기 전에는 결코 엉덩이를 뜨지 않는 것이 꾼들의 속성이지만 결국 패가 망신한다. 바카라에도 떠날 자리가 있고 끼어들 자리가 있다. 바카라는 손털고 문지방 넘어 갈 때의 득실을 따지는 게임이다. 따고 있다면 지금 문지방을 넘어라. 잃고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솔직히 질문하라. ‘오늘 내가 이 게임에서 승산이 있는가?’ 틀림없이 자신은 자신에게 대답을 줄 것이다. 여전히 망설여지는가? 질문을 다시하라. 질문이 올바르다면 이미 그 안에 해답을 품고 있다.
*불확정한 게임에서는 기세(氣勢)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승리의 첩경이다.
기세는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주도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바카라에서 기세를 거부하는 것은 통계적 속성에 대한 배반이고 끗발 상승의 외면이며 자기몰락의 뚜렷한 징조이다.
애인하고 마빡 맞기 고스톱이라면 몰라도 꿈을 안고 배팅한 돈을 두고 장난이 있을 수 없기에 진검승부를 겨루어 볼 수 있는 칼자루(경험)를 돈을 주고 사야한다면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맥심 30만 테이블에 앉았든 10만 테이블에 앉았든 땀과 눈물이 범벅된 돈이 아닌가? 바로 그 ‘돈’이 지금 배팅되어 있다면 결코 잃어서는 안 되며, 따더라도 크게 따야하기에 자신을 지키고 시장을 이길 비장의 무기를 위해 오늘도 자기에게 주어진 패를 쪼이며 판세와 판돈의 기울기에 따라 죽어야 할 자리와 판돈을 키워야 할 자리를 두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꾼의 생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우리는 ‘꾼’으로써 자질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자신부터 단단히 함으로써 판이 차려진 이 바닥의 생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지, 카지노의 돈이 내 돈으로 보이는 노름판의 어설픈 꾼처럼 욕심만 가지고 하는 배팅은 카지노라는 문지방을 방정맞게 넘었다 들어왔다 반복하지만 결국 몰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되니 이것보다 잔인한 진검승부는 없을 것이다.
불행과 실패로 허덕인 과거를 보상받는 최상의 돌파구는 바로 과거 자신의 실패가 그 열쇠였다는 것은 만고불변의진리인데,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열쇠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반복은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능한 목수는 틈틈이 연장을 갈고 손질한다. 나무만 있다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뛰어난 검객은 칼을 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노련한 꾼은 끈기와 기다림을 기본자세로 삼는다. 배팅은 항상 결정적 시기가 있기 마련인 것을 가슴깊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 돈을 번 것 같아도 욕망이라는 나뭇잎 하나가 눈앞을 가리면 태산을 볼 수 없는 것이 카지노 꾼들의 존재임을 기억하고 배짱과 겸손을 항상 칼처럼 가슴에 품어라.
오늘 카지노에서 돈을 벌었는가. 축하한다. 그러나 그 돈이 노획품인지 우연한 전리품인지를 자신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쥐똥인지 청국장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받아먹으면 안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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